BBNJ와 사람

2023년 6월 19일 채택된 공해 해양생물다양성(BBNJ) 협정은 발효를 위해 60개국의 비준이 필요한 가운데, 2025년 6월 18일 현재 50개국이 비준을 완료했다. 이러한 빠른 진전은 최근 프랑스 니스에서 개최된 유엔 해양 컨퍼런스(2025년 6월 9-13일)에서 정점을 찍었으며, BBNJ 관련 특별 행사에서 벨기에와 그리스를 포함한 18개국이 비준서를 기탁했다.

이처럼 전례 없는 속도의 비준은 글로벌 해양 거버넌스의 변화를 보여준다. 또 다른 유엔해양법협약 이행협정인 1995년 공해어업협정의 경우 발효에 필요한 30개국 비준을 달성하는 데 약 6년이 걸린바 있다. 반면 BBNJ 협정은 해양생물다양성 악화에 대한 인식, 해양 보호에 대한 합의 증대, 그리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공동 대응의 중요성 등이 맞물리며 빠른 진전을 이뤄내고 있다.

이 협정의 시급성은 특히 전 지구 해양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공해에 해양보호구역을 설정할 수 있는 잠재력에서 비롯된다. 공해 보호는 쿤밍‑몬트리올 프레임워크의 30% 해양 보호 목표 달성에 기여할 수 있는, 광대한 면적의 보호구역 지정 가능성 뿐아니라, 생물다양성 보전에서 기후 회복력 강화에 이르기까지 공해가 제공하는 중요한 생태계 서비스를 보호한다는 측면에서도 의의를 지닌다.

BBNJ 협정과 형평성

BBNJ 협정은 공유 자원의 비극을 방지하기 위한 거버넌스 체계를 마련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형평성과 인권적 관점에서 인간 이익을 조명하고 있다. 일례로 협정은 해양 접근성의 불평등에 대한 문제 제기를 반영한다. 이러한 구조적 불평등은 멀리 떨어져 있는 공해에 접근하기 위한 자원과 기술에 있어서의 불평등으로부터 기인하는데,  이러한 인식은 자원 수집의 혜택이 부유한 국가들에 집중되어 온 구조를 탈바꿈하고자 하는 시도로 이어졌다.

또한 협정은 토착민의 전통지식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그 가치를 존중하고 있다. 가령 제7조는 ‘가능한 경우, 토착민과 지역 공동체의 관련 전통지식을 활용한다’는 내용을 협정의 기본 원칙 중 하나로 명시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형식적인 문구가 아니라,  해양 지식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에서의 변화를 암시한다. 지금까지는 서구적 시각에서의 과학적 데이터 중심의 접근이 해양 거버넌스 지식 체계를 구성했다면, 이 협정은 전통지식 또한 생태계의 작동과 지속 가능한 이용 방식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으며, 실제 정책에 적용 가능한 지식으로 인정하고 있다.

최근 BBNJ 관련 연구에서도 이와 같은 측면을 중요하게 조명하고 있다. Caldeira 외의 논문 “Weaving science and traditional knowledge: Toward sustainable solutions for ocean management”은, BBNJ에서 전통지식이 해양의 생태적 가치와 더불어 문화적 중요성을 식별하는 데 있어 기여할 수 있음을 제시한다. 이 연구는 생물 다양성 측면에서 중요한 해역의 문화적 맥락을 인식하는 것이 보전의 가치를 더욱 다측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동시에 보호하는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태평양에 위치한 Salas y Gómez 및 Nazca 해저 능선은 이러한 통합적 시각의 한 사례로 제시되고 있다. 이 해역은 공해 해양보호구역(MPA) 후보지로서 생태학적 중요성을 지닐 뿐만 아니라, 문화적 가치도 지닌다. 과거 토착 항해자들은 이 해저산맥들을 항해 이정표로 활용해 왔으며, 해저에는 닻과 밧줄 등 전통 어업 활동 등 토착 문화의 고고학적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Gaymer 외, 2025). 이러한 사례는 BBNJ 협정이 지금까지 주변화되어 왔던 생태계와 공동체 모두를 새롭게 조명하고, 지배적인 해양 담론에서 인식 전환을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국가 관할권 밖” 밖에서의 함의

BBNJ 협정은 국가 관할권 너머의 해역에 관한 것이지만, 그 규범적 혁신은 해양 거버넌스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마치 해양보호구역(MPA)이 그 경계를 넘어 생물다양성 확산 효과(spillover effect)를 일으키듯, 이 협정의 원칙들 역시 다른 환경 및 해양 관련 제도들 속에서도 파급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공해와 직접 접하지 않는 한국의 경우에도 이러한 파급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한국의 해양 공간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시각들이 공존하는 곳이다. 지역 사회와 인접 공동체들은 주변 해역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지만, 그 지식이 어떻게 우리 모두의 해양을 보호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는 더 많은 고민과 탐색이 필요한 부분인데, BBNJ 협정을 통해 인접 공동체 관련하여 축적될 선례들이 여기에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 BBNJ 협정에 담긴 규범적 혁신은, 인간과 바다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려는 노력에도 의미 있는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 특히 단지 토착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해양 공간에 속하거나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그 관점이 해양 거버넌스에서 오랫동안 가려져 왔던 이들이 누구였는지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그 목소리는 사람일 수도 있고, 자연일 수도 있겠다. BBNJ가 제시하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바탕으로 해양과 연안을 둘러싼 당사자 간 관계를 다시 바라보고, 이에 대한 논의와 노력을 이어가는 일은, 한국의 해양 보호 정책을 국제적 흐름 속에서 재정립하고 새로운 관점을 적용해보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